2010년 02월 06일
09. 여름 자전거 여행 1일차.
어쩌다가 하도 심심해서... 지난 여름, 혼자서 해남까지 갔던 여행기를 써서 올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기필코 혼자서라도 땅끝까지 가리라고 벼르고 벼르던 날.
그런데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지렁이 세마리라도 기어가나 싶었달까.
그러나 결심은 결심,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이번에도 출발 안하면,
못가겠다 싶어 챙겨놓은 짐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자전거에 올라타 한남대교를 건넜다.
사실, 해남을 가기 위해 강화훈련, 혹은 소풍의 일환으로 강화도를 두번 다녀왔다.
그 중, 첫번째 강화도 행에서 갑작스러운 힘의 부하와 과격한 페달링에 왼쪽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얼마간의 요양을 한 후, 두번째 강화도 행에서 결국 다 낫지
않았다는 결론을 살속 깊이 느끼고야 말았다. 그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분명 해남까지 다리를 놀리다 보면 수시로 아프고 쑤셔올 것이 뻔함에도 그놈의 오기가
발동해서 힘들면 천천히 가겠다는 생각으로 출발을 하고야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잡은 경로는 남태령의 초반 언덕을 이 허벅지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양재천 따라 과천까지 가고 살짝 언덕을 넘어 안양-수원-오산-평택-천안으로 일단의
목표를 잡았다. 사실 교통량 많고 위험한 수도권을 벗어나려면 용산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서, 천안 급행전철을 타고 휘파람 불며 시작할수도 있었지만 자전거 여행을
자전거가 아니라 전철로 시작하면 그 무슨 우스운 일이냐며 페달을 밟은지
한시간 여 만에 왼쪽 허벅지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비도 언제 올지 몰라
꾸물꾸물한 날씨에 허벅지는 연신 비명. 그래도 이 미련한 나는 결국 허벅지를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인덕원 사거리쯤에 도착했는데, 마침 자전거 여행자
두명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는 양 두사람의 자전거 뒤엔
코펠과 배낭 등이 달려 있었고 달리기 편한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아주 먼 거리를 달려온 상태도 아닌데 새삼 '오 자전거 여행 하시나봐요? 저도 합니다.
서울에서 출발했어요.' 라며 말을 걸수도 없었고 마침 신호가 떨어졌기에
모른척 휭 추월해 달려갔다. 그렇게 혼자서 심심한 페달링을 하다가 도착한
오산.
오산은 부모님께서 장사하는 가게가 있는 도시. 사실 자전거 여행 단독으로 한다는
것은 부모님께 비밀이었지만 그래도 밥값을 아끼기 위해 가게로 들어갔더니....
너 대체 어딜 가냐며 야단 반, 응원 반.
그래도 어머니의 손맛이 담뿍 담긴 오징어 볶음을 먹고 든든하게 다시 1번 국도로
돌아왔다. 아마도 여행의 막바지 까지 함께 할듯한 1번 국도.
부모님의 차조심하라는 염려섞인 응원을 뒤로 하고 다시 작신작신 페달을 밟아대니
어느새 평택 초입에서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하면 천안이요 갈라지면 아산.
내륙보다는 그래도 바다쪽을 따라서 내려가는게 더 눈이 즐겁지 않을까 하여,
아산행을 택했다. 그때만 해도 아산 하면 아산만 방조제만 기억나서 바로 바다가
보일줄 알았더랬다. 출발 전에 무슨 객기인지 지도 한장 챙기지도 않고 머릿속에
제멋대로 그려낸 위성지도와 본능에 맡긴 gps 시스템만 믿고 대뜸 출발했던 것이다.
그래도 길은 제대로 골랐는지 이정표에 아산이 나오고 더 가면 예산 이정표가 나올때 즈음..
아. 카메라.
대실수였다. 비맞을것을 대비해 비닐에 꽁꽁 싸서 넣어 놓은것이 꺼내기 귀찮고
잠깐이라도 쉴 바엔 첫날에 페달 한번이라도 더 밟아서 서울과 좀 더 멀어지고 싶은
욕심에 저녁나절이 될 때 까지 단 한번도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남는게 사진인데- 라고 해도 찍어봤자 셀카 아니냐 라는
또다른 자아의 반대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전혀 재미없고 삭막해 보이는 곳에서
그래도 한장은 찍어야지, 첫날인데 하며 카메라를 꺼냈다.

<황량한 국도변의 자전거- 그 유명한 달리고 싶다는 철마...대체 무게가; ㅠ_ㅠ>

<자전거 뒤쪽의 무슨 석재>
그래 내가 뭐 아티스트도 아니고 기념샷 정도만 남기면 됐지.. 라며 찍은 두컷.
그리고는 해 떨어지기 전에 잘데를 찾자, 하며 예산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첫날이니 국도에 적응하고 무작위로 솟아올랐다 꺼지는 언덕의 평균 경사도에도
적응할 겸 슬슬 달려 보니 어느새 예산이었다. 더 가면 보령까지도 갈수 있지않나
싶었는데 밤길 달리기 보다는 첫날의 피로를 풀어주자 하며 예산에서 일단 멈추고
저녁거리를 찾는데 떠오른 뜬금없는생각.
역시 음식은 시장 한복판의 별볼일 없어 보이는 식당이 제맛이지, 적어도 그 동네
입맛을 알려면 말야... 라는.
그래서 시장통을 찾다가 어쩐지 못믿겠어, 내가 원하는 메뉴가 아냐 등등의 고민을
하던 끝에 들어간 곳은...

<이게 시장한복판이냐, 역앞이지>
예산역 바로 앞의 국밥집.
그래서 소머리 국밥을 주문했다. 원기보충엔 역시 쇠고기가 제일 아닙디까.

<보면 배고파지는 밥>
장갑과 마스크와 모자 등등을 허겁지겁 벗어놓고 새우젓을 풀어넣은 다음 맛있게 게눈 감추듯이
해치워버렸다. 은근히 시장 복판도 아니고 역 앞이라서 맛이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 이거 웬 횡재다 싶었다. 사실 하루 종일 달렸으니 피곤해서 뭘 먹어도 꿀맛일수 있겠으나
나름 식도락가이고 싶어하는 혓바닥을 가지고 있는 터라, 평균 이상으로 맛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에는 봐두었던 터미널 지하 찜질방으로 직행하여
도로에서 덕지덕지 묻힌 매연과 먼지들을 씻어내고 만화책 30여 권을 내리 보다가...
잠이들고 말았다. 까무룩.
---------------------------------------------------------------------------------------------------------------
덧. ..... 언제 포스팅을 했는지 가물가물- 까지는 아니고, 사실 날짜 보면 알수 있으니 말입니다.
전에 일하던 회사 그만 두고 방황하다가 요즘은 아동출판쪽에 종사를 하고 있습니다.
네... 학교 다니면서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농담삼아 떠들고 다녔던 그 편집 디자인. 게다가 아동;
야동이 아닙니다. 따위의 시덥잖은 농담은 접어두려고 했으나 이미 슬금슬금 써버렸군요.
인생사 새옹지마입니다.
그동안 밥이 코로 들어갈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하지만 통장은.. ㅠ_ㅠ)
요즘은 좀 한가해져서 집에 들어와 뒹굴거리다 생각난게,
작년 여름 한창 고민하던 시절 떠났던 여행에 대해 한줄도 쓰지 않았던게 기억나서
대뜸 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초고고 뭐고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가는거지요.
당시를 회상하며, 최대한 그때의 기분에 솔직해지길 기원하며....?
..그러고 보니 또 여행가고 싶네요. 겨울 자전거 여행도 재밌을법 합니다만..
회사.. ㅠ_ㅠ
비정기적으로, 아마 회사일이 다시 바빠지기 전까진 여행기를 끝낼 요량으로
써보겠습니다.
# by | 2010/02/06 00:13 | 여행기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