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여름 자전거 여행 1일차.

어쩌다가 하도 심심해서... 지난 여름, 혼자서 해남까지 갔던 여행기를 써서 올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기필코 혼자서라도 땅끝까지 가리라고 벼르고 벼르던 날.
그런데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지렁이 세마리라도 기어가나 싶었달까.
그러나 결심은 결심,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이번에도 출발 안하면,
못가겠다 싶어 챙겨놓은 짐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자전거에 올라타 한남대교를 건넜다.

사실, 해남을 가기 위해 강화훈련, 혹은 소풍의 일환으로 강화도를 두번 다녀왔다.
그 중, 첫번째 강화도 행에서 갑작스러운 힘의 부하와 과격한 페달링에 왼쪽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얼마간의 요양을 한 후, 두번째 강화도 행에서 결국 다 낫지
않았다는 결론을 살속 깊이 느끼고야 말았다. 그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분명 해남까지 다리를 놀리다 보면 수시로 아프고 쑤셔올 것이 뻔함에도 그놈의 오기가
발동해서 힘들면 천천히 가겠다는 생각으로 출발을 하고야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잡은 경로는 남태령의 초반 언덕을 이 허벅지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양재천 따라 과천까지 가고 살짝 언덕을 넘어 안양-수원-오산-평택-천안으로 일단의
목표를 잡았다. 사실 교통량 많고 위험한 수도권을 벗어나려면 용산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서, 천안 급행전철을 타고 휘파람 불며 시작할수도 있었지만 자전거 여행을
자전거가 아니라 전철로 시작하면 그 무슨 우스운 일이냐며 페달을 밟은지
한시간 여 만에 왼쪽 허벅지는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비도 언제 올지 몰라
꾸물꾸물한 날씨에 허벅지는 연신 비명. 그래도 이 미련한 나는 결국 허벅지를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인덕원 사거리쯤에 도착했는데, 마침 자전거 여행자 
두명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는 양 두사람의 자전거 뒤엔
코펠과 배낭 등이 달려 있었고 달리기 편한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아주 먼 거리를 달려온 상태도 아닌데 새삼 '오 자전거 여행 하시나봐요? 저도 합니다.
서울에서 출발했어요.' 라며 말을 걸수도 없었고 마침 신호가 떨어졌기에
모른척 휭 추월해 달려갔다. 그렇게 혼자서 심심한 페달링을 하다가 도착한
오산. 
오산은 부모님께서 장사하는 가게가 있는 도시. 사실 자전거 여행 단독으로 한다는
것은 부모님께 비밀이었지만 그래도 밥값을 아끼기 위해 가게로 들어갔더니....
너 대체 어딜 가냐며 야단 반, 응원 반.
그래도 어머니의 손맛이 담뿍 담긴 오징어 볶음을 먹고 든든하게 다시 1번 국도로
돌아왔다. 아마도 여행의 막바지 까지 함께 할듯한 1번 국도.

부모님의 차조심하라는 염려섞인 응원을 뒤로 하고 다시 작신작신 페달을 밟아대니
어느새 평택 초입에서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하면 천안이요 갈라지면 아산.
내륙보다는 그래도 바다쪽을 따라서 내려가는게 더 눈이 즐겁지 않을까 하여,
아산행을 택했다. 그때만 해도 아산 하면 아산만 방조제만 기억나서 바로 바다가
보일줄 알았더랬다. 출발 전에 무슨 객기인지 지도 한장 챙기지도 않고 머릿속에
제멋대로 그려낸 위성지도와 본능에 맡긴 gps 시스템만 믿고 대뜸 출발했던 것이다.
그래도 길은 제대로 골랐는지 이정표에 아산이 나오고 더 가면 예산 이정표가 나올때 즈음..


아. 카메라.
대실수였다. 비맞을것을 대비해 비닐에 꽁꽁 싸서 넣어 놓은것이 꺼내기 귀찮고 
잠깐이라도 쉴 바엔 첫날에 페달 한번이라도 더 밟아서 서울과 좀 더 멀어지고 싶은
욕심에 저녁나절이 될 때 까지 단 한번도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남는게 사진인데- 라고 해도 찍어봤자 셀카 아니냐 라는 
또다른 자아의 반대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전혀 재미없고 삭막해 보이는 곳에서
그래도 한장은 찍어야지, 첫날인데 하며 카메라를 꺼냈다.

<황량한 국도변의 자전거- 그 유명한 달리고 싶다는 철마...대체 무게가; ㅠ_ㅠ>


<자전거 뒤쪽의 무슨 석재>

그래 내가 뭐 아티스트도 아니고 기념샷 정도만 남기면 됐지.. 라며 찍은 두컷.
그리고는 해 떨어지기 전에 잘데를 찾자, 하며 예산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첫날이니 국도에 적응하고 무작위로 솟아올랐다 꺼지는 언덕의 평균 경사도에도 
적응할 겸 슬슬 달려 보니 어느새 예산이었다. 더 가면 보령까지도 갈수 있지않나 
싶었는데 밤길 달리기 보다는 첫날의 피로를 풀어주자 하며 예산에서 일단 멈추고
저녁거리를 찾는데 떠오른 뜬금없는생각.
역시 음식은 시장 한복판의 별볼일 없어 보이는 식당이 제맛이지, 적어도 그 동네
입맛을 알려면 말야... 라는.
그래서 시장통을 찾다가 어쩐지 못믿겠어, 내가 원하는 메뉴가 아냐 등등의 고민을
하던 끝에 들어간 곳은...


<이게 시장한복판이냐, 역앞이지>

예산역 바로 앞의 국밥집.
그래서 소머리 국밥을 주문했다. 원기보충엔 역시 쇠고기가 제일 아닙디까.



<보면 배고파지는 밥>

장갑과 마스크와 모자 등등을 허겁지겁 벗어놓고 새우젓을 풀어넣은 다음 맛있게 게눈 감추듯이
해치워버렸다. 은근히 시장 복판도 아니고 역 앞이라서 맛이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 이거 웬 횡재다 싶었다. 사실 하루 종일 달렸으니 피곤해서 뭘 먹어도 꿀맛일수 있겠으나
나름 식도락가이고 싶어하는 혓바닥을 가지고 있는 터라, 평균 이상으로 맛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에는 봐두었던 터미널 지하 찜질방으로 직행하여
도로에서 덕지덕지 묻힌 매연과 먼지들을 씻어내고 만화책  30여 권을 내리 보다가...
잠이들고 말았다. 까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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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 언제 포스팅을 했는지 가물가물- 까지는 아니고, 사실 날짜 보면 알수 있으니 말입니다.
전에 일하던 회사 그만 두고 방황하다가 요즘은 아동출판쪽에 종사를 하고 있습니다.
네... 학교 다니면서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농담삼아 떠들고 다녔던 그 편집 디자인. 게다가 아동;
야동이 아닙니다. 따위의 시덥잖은 농담은 접어두려고 했으나 이미 슬금슬금 써버렸군요.
인생사 새옹지마입니다.

그동안 밥이 코로 들어갈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하지만 통장은.. ㅠ_ㅠ)
요즘은 좀 한가해져서 집에 들어와 뒹굴거리다 생각난게,
작년 여름 한창 고민하던 시절 떠났던 여행에 대해 한줄도 쓰지 않았던게 기억나서
대뜸 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초고고 뭐고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가는거지요.
당시를 회상하며, 최대한 그때의 기분에 솔직해지길 기원하며....?

..그러고 보니 또 여행가고 싶네요. 겨울 자전거 여행도 재밌을법 합니다만..
회사.. ㅠ_ㅠ

비정기적으로, 아마 회사일이 다시 바빠지기 전까진 여행기를 끝낼 요량으로
써보겠습니다. 

by 미역군 | 2010/02/06 00:13 | 여행기 | 트랙백

라마단을 맞이하여 돌이켜 보는 내 옆방의 독특한 이웃.

한남동에서 자취 6년째입니다. 이태원과도 아주 가깝지요.
게다가 산꼭대기라 방세도 제법 싼 편이고, 덕분에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이국의 정취를 물씬- 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느낄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항상 저를 괴롭히는 것 하나가
바로 옆방에 사는 가족인데요
저 멀리 파키스탄에서 온 무슬림 가족입니다.
3년째 옆방에서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아저씨만 혼자 살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아마 파키스탄에서 아내와 아이가
함께 온것 같네요. 방 크기는 정말 책상과 냉장고 간이 옷장.
그렇게 넣으면 몸 딱 하나 누일 공간인데,
이 뜨거운 여름에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들이 저를 첫번째로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음식 냄새지 뭔가요.
커리와 각종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
양고기 냄새!
......


야밤에 그렇게 냄새를 풍기면서 요리를 해대면
배고파지잖아요! ㅠ_ㅠ
저녁을 먹었지만, 식욕을 급 돋구는 그 냄새는 정말;;;
그리고 수시로 들리는 인도 가요!
아.. 그건 인도 음식점 가서 듣는것만 으로도 충분해요.


3년전 아저씨가 혼자 살때 옆방에 잠깐 손님으로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국산 TV를 중고로 구입했는데 설정메뉴가 모조리
한글이어서 짧은 실력의 한국어로는 아저씨가 원하는
설정을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옆방의 대학생이었던 저를 찾아와서
TV좀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정작 가서 보니
뭘해도 안되는 부분이었던거예요.
이게 리모콘을 한시간동안 잡고 이짓 저짓을 해봐도
아저씨가 원하는 설정은 도대체 할수가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 이 TV가 그게 문제인것 같다고
미안해 하며 제 방으로 돌아오려는데
이 아저씨, CD플레이어의 AV잭을 TV와 연결하더니
인도의 잘나가는 유명한 뮤지션들의 CD를 넣고는
아주 자랑스러워면서 보여주는게 아닙니까.

형형색색의 의상과 너울거리는 군무.
어쩐지 지하상가 악기매장 주인아저씨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기름기 잘잘 흐르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여 주시는 중년임이 확실한
남자 가수와, 30은 넘어보이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풍만한 볼륨을 자랑하는 여배우의 연기와 노래!
분명, 음악의 각종 장르적 특성을 융합시킨것
같지만 결코 익히 알고있는 인도음악의 테두리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음악적 시도!

저는 신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CD 두장을 감상하고 인도 가수의
-파키스탄 인이면서 인도가수를 그렇게 소개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은 이해를 할수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원래 한나라였잖아요? 물론 종교때문에
나눠지긴 했지만, 결국은 그들이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문화적 코드는 같은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죠-
소개와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또 저를 잡는겁니다.
바나나 먹고 가라구요.

그러나 이미 저는 밥을 많이 먹어서 배가 가득 찬
상태이고 또 친구가 방으로 놀러온다고 해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먹고 가라는 거
극구 극구 사양하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TV해결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결국 바나나를 받아서 들고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바나나가 식도를 역류했어도
그자리에서 먹고 왔어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그게 실례인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서야 알았다는...

여하튼, 매일매일 쉬지않고 들리는 인도 음악 덕분에
인도 음식점가서 들리는 노래들은 죄다 한번씩은
들어본 노래라는.... 놀라운 경험치가 쌓였습니다.


그리고 라마단이 어제부터였나요.
여지껏 라마단 기간만 되면, 옆방에서는
해가 다 떨어지고, 대충 한 9~10시쯤이 되면
근처에 사는 아저씨의 무슬림 친구들은 모두
모이는거 같아요. 모두모두 모여서
신나게 강렬한 양고기 요리하는 냄새와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를 풍기면서 신나게
요리를 하고 인도노래를 틀어놓고-

...네 적어도 새벽 3시까지는 파티를 했다죠.


그래서 저는 라마단을 좋아할래야 좋아할수가
없었습니다. 야근을 하고 들어와서
좀 자려고 하면.... 이미 한창 노는시간대라
도저히.... 잘수가 없었어요.

정 잘 수 없을때는 찾아가서 조금만 소리를
낮춰달라고 부탁을 하고 잠을 청하지만,
아주 약간 소리가 작아질 뿐이죠.

꼭 라마단이 아니더라도 아저씨가 친구들이
많아서, 저런 일이 비일비재 했지요.


그러나 작년 겨울즈음부터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못보던 아주머니와 아이가 생긴거예요!
눈치를 보니 파키스탄에서 아저씨를 따라
한국으로 온것 같더라구요.
그 이후로 옆방의 손님은 부쩍 줄고-

..네 저거 하납니다. 손님이 부쩍 줄었어요.
위장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음식냄새와
인도노래는 변하질 않아요.
그래도 그 냄새와 노래에 적응하고 은근히
정까지 들어서 간혹 즐기기도 합니다.
이번 라마단은 작년정도까지 엄청나진
않을거 같아요. 저도 숙면을 취할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음악소리보다 저쪽 언어로 대화하는 목소리가
너무 컸던게 불편했던 점이었으니까요.
남정네들끼리 와구와구 새벽까지 떠들어대는.

라마단 끝나기 전에 옆집 아저씨와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격려의 라마단 인사를 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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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옆집 아주머니, 본의아니게 얼굴을 봐서
미안해서 어쩌죠. 지금 백수시즌이라  무시로
방과 밖을 왔다갔다 할때 빨래널러 나오다
마주치거나, 더운 방에서 나와 한남동의 전경을
바라보며 복도 겸 테라스에서 아이 공부시키다가
마주치거나...
무슬림의 여인들은 외간남자들한테 얼굴을
보이면 안된다면서요. 그래서인지 저랑 마주치면
번개같이 집안으로 피신을 하십니다만....
무슬림 이웃이 있는데도 그들을 이웃으로 대할
충분한 공부가 없는 점은 좀 반성해야겠어요.

혹시나 '무슬림 이웃과 사는법'에 대해 조언해 주실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댓글 누질러주세요.

물론 긴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내고 최종라인까지
읽어내려오신 분이 계시다면요 ^^

by 미역군 | 2009/08/23 19:23 | JUNK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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